Evolution 9 스타일에 대하여

SLGH005 ‘하얀 자작나무’에서 시작된 Evolution 9 컬렉션의 디자인 철학을 밝히다


혁신적인 그랜드 세이코의 디자인은 2020년에 새롭게 개발된 칼리버 9SA5를 탑재하고 있으며, 동시에 브랜드의 헤리티지와도 깊은 일관성을 보여줍니다.

이 디자인의 요소들은 하나의 코드로 정리되어, 이후 Evolution 9 스타일이라는 철학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이 디자인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안에 담긴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제, 그 탄생 배경과 숨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1967년 출시된 시계, 일명 44GS는 이후 그랜드 세이코 디자인 철학의 출발점이 된 상징적인 모델입니다.
당시 44GS에 담긴 디자인 요소들은 훗날 ‘그랜드 세이코 스타일’로 정리되어, 브랜드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전통 위에 새롭게 구축된 Evolution 9 컬렉션은 ‘시대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디자인’을 테마로 그랜드 세이코 스타일을 한층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새로운 디자인 코드를 제시합니다.

디자인 기획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랜드 세이코란 본질적으로 어떤 시계인가?'
즉, 그랜드 세이코의 정체성과 근본을 되짚는 데서 출발한 것이죠.

탁월한 오토매틱 무브먼트인 칼리버 9SA5를 담아낼 이상적인 디자인은 무엇인가?
이 깊은 고민은, 'SLGH005 ‘하얀 자작나무(White Birch)’라는 모델을 통해 하나의 형태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이 시계에는 아홉 가지 핵심 디자인 요소가 담겨 있으며, 과거 44GS가 그랜드 세이코 디자인의 기준이 되었듯,
SLGH005 역시 이후 컬렉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디자인 언어를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하나의 디자인 코드로 정리되어, 후속 모델들에 반영되며 Evolution 9 스타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디자인은 세 가지 핵심 진화를 보여줍니다.
그랜드 세이코가 오랜 세월 추구해온 미학적 아름다움, 탁월한 가독성, 그리고 손목 위에서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착용감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룹니다.

 
그랜드 세이코 디자인의 원형이 된 시계는 바로 1967년에 공개된 44GS였습니다.
이 44GS에서 비롯된 디자인 요소들은 훗날 ‘그랜드 세이코 스타일’로 정립되어,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을 상징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초기 Evolution 9 스타일의 디자인 스케치에는 두께감 있는 인덱스와 같은 특징이 담겨 있었지만, 이 디자인을 완성도 있게 다듬기까지는 거의 2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얀 자작나무(White Birch)’ 모델을 통해 살펴보는 Evolution 9 스타일의 핵심 디자인

< Ⅰ. 미학의 진화 >

칼리버 9SA5를 탑재한 SLGH005는 Evolution 9 스타일의 출발점 중 하나로 꼽힙니다.
와이드한 헤어라인 피니시가 시계 표면을 감싸며, 그 사이사이에 정교하게 배치된 슬림한 미러 피니시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SLGA009는 그랜드 세이코의 오토매틱 Spring Drive 5 Days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그랜드 세이코 스타일에서 케이스 측면에 적용되었던 리버스 베벨(reverse bevel) 디테일은, SLGA009에서는 러그 끝단에 반영되어 케이스에 한층 가벼운 인상을 더해줍니다.

헤어라인 그라데이션은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입체적인 효과를 연출하며, 시계 전체에 한층 더 입체감 있는 존재감을 부여합니다.

그랜드 세이코는 오랫동안 진중하고, 단정하며, 견고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왔습니다. 반면, 새로운 칼리버 9SA5는 혁신의 정신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성격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디자인, 바로 그것이 Evolution 9 스타일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의 영감은, 그랜드 세이코의 헤리티지 속에서 찾아졌습니다.

과거 '61GS V.F.A.'와 같은 그랜드 세이코 모델들은 섬세한 인덱스를 통해 탁월한 정밀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Evolution 9 스타일은 이 같은 메시지를 케이스 디자인을 통해 새롭게 해석합니다.
브레이슬릿을 고정하는 네 개의 러그는 손목 곡선을 따르는 형태 대신, 최대한 직선에 가깝게 설계되었으며, 러그의 끝은 길게 뻗어 있어 착용감을 높이는 동시에, 시계를 하나의 오브제로서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디자인 초기에는 러그를 아래로 굽히는 방향도 검토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끝이 위로 날렵하게 솟아오른 형태로 완성되어, Evolution 9 스타일 특유의 선명하고 강렬한 실루엣을 만들어냈습니다.

수직으로 뻗은 러그는 조각적인 접근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예술 조각 작품에서 무거운 재료로 만들어졌음에도 전체적으로 가볍고 유려한 인상을 주는 것처럼, 디자인팀 역시 볼륨감이 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로는 가볍고 부드러운 케이스를 떠올렸습니다. 여기에 빛과 그림자의 대비라는 요소도 디자인에 함께 담겼습니다.
과거의 그랜드 세이코 모델들은 광택이 있는 미러 피니시 면적이 넓어, 비즈니스 슈트와 잘 어울리는 드레시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반면, Evolution 9 스타일은 현대적인 워크 스타일 
즉, 정장뿐 아니라 더 활동적인 복장에도 잘 어울리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44GS와 전통적인 그랜드 세이코 모델의 특징 중 하나였던 미러 피니시의 사용은 최소화되었고, 대신 헤어라인 피니시가 주요 마감 방식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는 절제된 인상을 주면서도, 외관에 사용된 미러 피니시가 오히려 더 뚜렷하게 강조되는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결과적으로, 디자인팀은 이전 모델들보다도 더욱 강렬한 명암 대비를 갖춘 세련되고 현대적인 외관을 완성해냈습니다. 

< Ⅱ. 가독성의 진화 >

SLGH005의 다이얼에는 매혹적인 하얀 자작나무 패턴이 새겨져 있습니다. 배경이 강한 텍스처를 지녔지만, 그랜드 세이코 특유의 높은 가독성은 전혀 손상되지 않습니다. 분침과 초침의 팁은 비스듬한 각도에서도 시간을 정확히 읽을 수 있도록 곡선 형태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Spring Drive 5 Days 칼리버 9RA2를 탑재한 SLGA009의 다이얼은 처음 설계 단계에서는 12시 방향 인덱스가 지금보다 훨씬 더 넓은 형태로 디자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테스트를 거치며 최적의 비율을 찾은 끝에, 지금의 균형 잡힌 사이즈로 조정되었습니다.

최초의 GS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핸즈와 인덱스에는 한층 더 선명한 대비감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랜드 세이코의 상징적 특징인 가독성을 중심으로, Evolution 9 스타일은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침과 분침 사이에 구현된 날카로운 대비감입니다.

탁월한 칼리버를 품고 있다는 가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팀은 처음부터 12시 방향 인덱스를 더 크게 설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Evolution 9 스타일의 뛰어난 가독성은 큼직한 인덱스와 시침·분침의 두께 차이에서 구현됩니다. 디자인팀은 그랜드 세이코에 진정으로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하며, ‘진정한 가독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바로 시침과 분침의 두께를 다르게 설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초기 디자인에서는 두 바늘 모두 날렵하게 뾰족한 형태였지만, 나중에는 시침의 팁을 다듬어 인덱스와 자연스럽게 겹치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용자는 대략적인 시간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가느다란 분침을 통해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능성과 디자인이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그랜드 세이코만의 가독성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랜드 세이코는 전통적으로 다이얼과 핸즈 사이의 여유 있는 간격을 유지해왔지만, Evolution 9 스타일에서는 이 간격을 더욱 줄였습니다.
또한, 분침과 초침의 팁을 다이얼 쪽으로 눈에 띄게 굽혀, 비스듬한 각도에서도 시간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다이얼 가장자리에는 안쪽으로 기울어진 링 형태의 부품이 장착되어 있으며 그 위에 인쇄된 미닛 트랙이 핸즈와 가능한 한 가깝게 배치되어, 한층 더 정밀하고 직관적인 시간 읽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최초의 그랜드 세이코에 사용된 균형 잡힌 시침과 분침은, 그랜드 세이코의 디자인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가독성과 아름다움의 개념을 더욱 풍부하게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 Ⅲ. 착용감의 진화 >

SLGH005의 또 하나의 진화된 특징은, 이전의 9S 칼리버보다 얇은 칼리버 9SA5 덕분에 구현된 비교적 슬림한 케이스입니다. 브레이슬릿 역시 적절한 너비와 두께, 그리고 일반 링크보다 1mm 짧은 링크 구조를 적용해 한층 더 편안한 착용감을 선사합니다.

Spring Drive 5 Days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한 SLGA009는, 디자인 면에서 SLGH005와 거의 동일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레이슬릿은 겉보기에는 세 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좁은 링크가 가운데 배치된 다섯 줄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랜드 세이코의 전통을 따라, 각 링크는 좌우로 적절한 여유를 두어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손목에 자연스럽게 밀착되는 뛰어난 착용감을 제공합니다.

차세대 무브먼트는 무게 중심을 낮추고 러그 폭을 넓힘으로써, 착용감을 한층 더 향상시켜 줍니다.

미학과 가독성은 그동안의 그랜드 세이코 모델들이 꾸준히 추구해온 핵심 요소였습니다. Evolution 9 스타일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착용감’이라는 요소를 더 깊이 있게 반영했다는 점입니다.

1967년, 그랜드 세이코 스타일을 확립한 44GS는 얇은 수동 무브먼트를 탑재한 모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착용감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토매틱 무브먼트의 등장과 견고함을 중시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무브먼트의 두께는 점점 두꺼워졌고, 이에 따라 착용감 역시 중요한 고려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Evolution 9 스타일을 정의하기 위해 그랜드 세이코 팀이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바로 ‘무게 중심을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도 그렇듯, 시계 역시 무게 중심이 낮아질수록 흔들림이 줄어듭니다. 무브먼트를 케이스 뒷면 쪽에 가깝게 배치함으로써, 시계의 무게가 손목 쪽으로 더 가까워져 안정적인 착용감을 제공하게 됩니다.
또한, 44GS 이후의 그랜드 세이코 모델들은 케이스 측면을 케이스백 방향으로 깎아내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지만, Evolution 9에서는 이와 반대로 ‘남기는 디자인’에 도전했습니다.
입체적인 크리스탈 글라스를 활용한 것도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한 전략 중 하나였습니다. 실제 치수 차이는 미미할 수 있지만, 핸즈가 움직일 수 있도록 내부에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글라스 테두리의 높이를 줄여 전체적인 외관은 더욱 얇고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브레이슬릿 역시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되었습니다. 이전 모델들은 보통 40mm 직경의 케이스에 20mm 폭의 브레이슬릿을 연결하는 구조였지만, SLGH005는 Evolution 9 스타일에 맞춰 22mm 폭의 브레이슬릿을 적용했습니다. 넓어진 브레이슬릿은 시계의 무게를 보다 고르게 분산시켜,착용감을 한층 더 향상시켜줍니다.

브레이슬릿은 단순히 폭만 변경된 것이 아니라, 연결 위치까지도 새롭게 조정되었습니다. 기존 모델들과 비교해, 링크 길이를 1mm 더 짧게 설계해 손목에 더 밀착되는 착용감을 구현했으며, 러그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실루엣을 위해 브레이슬릿의 두께도 더욱 두툼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브레이슬릿이 두꺼워진 덕분에, 시계 본체와 브레이슬릿 간의 무게 균형도 한층 더 조화롭게 맞춰졌습니다. 또한, 슬림한 미러 피니시 링크와 전통적인 헤어라인 마감을 계승하여, 브레이슬릿 디자인 속에서도 그랜드 세이코 스타일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인터뷰

기요타카 사카이 (Kiyotaka Sakai) – 프로덕트 디자이너

2012년 입사한 기요타카 사카이(Kiyotaka Sakai)는 국내외 시장을 위한 시계 개발을 거쳐, 현재는 그랜드 세이코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Evolution 9 컬렉션, ‘하얀 자작나무(White Birch)’, 그리고 슬림 드레스 워치 시리즈를 설계했으며, 그의 디자인은 GPHG,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등 여러 디자인 상을 수상하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진: 오쿠야마 에이이치 (Eiichi Okuyama)
글: 히로타 마사유키 (Masayuki Hirota, 크로노스 일본판 편집장)